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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잘 살자 어느 시점인지 정확히 잡긴 어렵지만 동갑내기 친구들을 만나면 짠해지는 감정이 든다. 내 몸이 심각하진 않지만 살짝 불편하게 한 두 군데씩 고장나면서부터, 누군가 만나서 굳이 건강에 대한 이슈를 물어보지는 않지만 나도 이런데 그 친구도 그러겠거니 싶어서 짠해진다. 서로 건강에 대한 안부를 묻지만 우리는 그 안부의 해상도가 높을 필요가 없다. 상사와의, 젊은이들과의 사회생활이 길어지면서 중간에 끼인 존재로의 경험이 길어지면서, 그 친구도 실컷 끼어있겠거니 싶어서 짠해진다. 신세타령보다는 날씨 얘기가 더 건설적이라 우리는 날씨 얘기만 한다. 아니 이제 40대 초반인데 벌써 이러면 어떡하나. 2026. 3. 7.
솔직함의 비용 패기 넘치는 우리 팀원들과 수평적 관계를 표방하며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수평적 관계를 존중하는 방식의, 'Metaplan'이라는 토론 방식을 함께 시도해봤다. 메타플랜은 사실 독일의 회사 이름이고, 다른 이름으로는 facilitated brainstorming, post-it discussion 등으로 불린다. 일전에 참여자로 메타플랜을 해본 적이 있는데, 회의라는 자리에서 처음 느끼는 것들이 많았다. 내 의견이 존중받는 것,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건설적으로 토론하는 것, 최종 결론이 명확하게 나는 것. 이 모든 것을 포스트잇, 화이트보드, 펜을 가지고 만들어가는 방식의 회의. 다양한 의견들로부터 명확한 문장을 채굴하기까지 진행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했는데, 이번엔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2026. 3. 5.
별일 없이 산다 누군가 잘 사는가에 대한 지표를 발 뻗고 중간에 깨지 않고 꿀잠자는 것으로 언급한걸 들었는데, 그 기준으로는 나는 아주 잘 살고 있다. 오늘은 문득 감정의 기복이 정말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과 지지고 볶고 하지만 또 크게 슬프거나 기쁠 일도 없는 삶. 이런 삶이 행복이기에 또 힘든 삶의 구간들도 버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정신이 건강할 때에 건강한 헛소리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훌륭한 시니어로 성장한 친구를 보며 나도 저 정도의 깊이가 있는 사람인가 되짚어 보았다. 깊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은 확실히 없다. 업무 시간엔 업무에 집중하고 집에 있을 땐 가족에 집중하다보니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다. 그런데 나에게 깊이가 있을리가. 짤막하게 갖는 시간마다 책을 펼.. 2026. 2. 18.
스도쿠, 넘어가기 최근 나와 나이 차이가 띠동갑이 넘는 젊은이들과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젊은이들과 일하는 것은 매우 즐겁지만 팀원 수가 늘어날수록 집중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 뇌가 장거리 마라톤을 뛰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집에 오면 기진맥진해지기 일쑤다. 한달 전쯤 한참 업무가 많아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있을 때 잠깐 쉬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오랫만에 머리를 비울 겸 스도쿠를 했는데 엄청나게 중독되어 버렸다. 규칙이 단순하고 집중할 수 있어 쉬는 목적의 유희로는 제격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오랫만에 다시 시작한 게임인데 실력이 엄청 늘어버렸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깨지 못했던 초고난도의 스테이지들을 격파하며 더 중독되어버렸다. 나이를 먹으며 더 똑똑해질 일은 없을텐데 왜 이런 기현상이 생겼을까 고민해보았다. 잘.. 2026. 1. 30.
잡념 이 게을러 빠진 손가락을 질질 끌고똥이라도 쓰러 왔다. 1년 내로 사람이 프로그램을 짤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유명 프로그래머들의 예언을 보며,그리고 계속 성장하고 있는 AI 코딩 서비스들을 경험하며,인생 허무함을 느끼고 있다. 과연 창조하는 행위가 앞으로도 가치있는 행위일까. 한 사람이 에펠탑을 하루만에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이 세상은 온갖 탑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될 것이다.그렇다면 탑은 무슨 의미를 가지며, 그것에 대한 열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최근엔 이런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마냥 허우적거리게 두고 있다.이젠 좀 정신을 차려야 할텐데. 2026. 1. 27.
디지털 식민지에 대해 아시나요? 식민지라는 단어는 역사 교과서에나 나오는 낡은 단어인 줄 알았지? 하지만 우리가 매일 두드리는 인터넷 주소창에도 식민지가 존재한다. .nu 도메인이 바로 그 예다. 북유럽, 특히 스웨덴이나 덴마크에 가면 .nu 라는 도메인을 많이 활용한다. 그쪽 언어로 'nu'가 '지금(Now)'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Køb.nu, Köp.nu = 지금 사세요Bestil.nu = 지금 주문하세요 마케터들이 딱 좋아할 만하다. 얼마나 직관적인가. 사실 이 도메인의 진짜 주인은 북유럽이 아니라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니우에(Niue)'이다. 인구 1,600명 남짓한 그 작은 섬나라 도메인의 관리 권한과 수익의 대부분은 스웨덴 인터넷 재단이 가져간다. 명분은 아주 세련됐다 - "우리가 기술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 2026. 1. 21.